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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야기

공감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어야 한다.

by 솔토지빈 202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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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어야 한다.

Contents

     

    1.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아름다운 수채화와 같은 사진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백소아 기자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은 너무나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사진의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2021118일 그날은 영하 9도의 매서운 추위와 함께,

    아침부터 소낙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거센 눈발에도 사진 취재를 위해 서울역 앞 광장으로 향하던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의 눈에

    두 남자가 뭔가를 주고받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상하고 궁금한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기자는 노숙인 차림의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내 어깨를 잡더니

    입고 있던 외투와 장갑을 줬어요.

    너무 고맙고, 눈물이 납니다.“

     

    백소아 기자가 주위를 둘러보자, 점퍼를 건넨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미끄러운 눈길 위로 뒤를 쫓아갔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소아 기자는 3분도 안 되는 짧은 찰나

    마치 단편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노숙인의 모습은 얇은 수면 바지

    겨울옷이라고 할 수 없는 초록색 군복, 얇은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 남자는 왜 자신의 점퍼와 장갑 그리고 돈까지

    그 노숙인에게 선뜻 내주었을까?

     

    아마도 그 남자가 추운 겨울을 지내는 노숙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공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투와 장갑을 벗어 줌으로써

    동정이 아닌 공감적 행동임을 보여준

    그해 겨울의, 따뜻한 모습이었다.

     

    2. 폭우 속에 사랑의 우산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수레를 끄는 할머니에게

    수호천사가 다가왔다.

    출처 : sbs 뉴스

    작년 9월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성을 가진 아름다운 대학생이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공감적 행동이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연이 하나둘씩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다.

     

    3. 공감이 붕괴한 역사적 순간들

    역사를 돌이켜보면 공감이 집단으로 붕괴한 순간들이 너무도 많았다.

    20세기는 대학살의 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으로 4천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포함하여 8천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외에 아르메니아에서 벌어진 대학살, 발칸반도 코소보, 캄보디아, 르완다에 벌어진 학살은 20세기에 인류는 공감이 실종된 상태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사진은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유대인 600만 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던 장면이다.

     

    이사진은 캄보디아의 공산정권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간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현장이다.

     

    1994년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100일 동안

    투치족 80만 명을 살해한 장면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 악마가 되어

    같은 인간을 참혹하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어쩌면 인간의 공감 능력은

    본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다.”

    섬뜩한 이 표현은 소련의 독재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스탈린이 한 말입니다.

     

    스탈린은 정적 2천만 명 이상을 처형했다고 한다.

    스탈린이 저질은 끔찍한 학살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우쿠라이나에서 그리고 중동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이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동물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동물이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1651년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들을 어떤 형태의 정부도 없이 자연 상태에 내버려 둔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며

    인생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사악하고 야만스럽고 짧을 것이다

     

    어쩌면 홉스의 말대로 인간은 흉악한 모습으로

    상대방을 죽이고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는 행동 때문에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홉스가 죽고 200년이 지난 후에 위대한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적절한 통제가 없으면 동족들을 배려한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잔혹한 야수가 된다라고 홉스와 같은 생각으로 말했다.

     

    4. 살인의 보편성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친구와 행복한 하루를 보내다가

    순식간에 그 단계를 뛰어넘어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목표인 컴퓨터 게임을 한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록 현실 속 세상은 아니지만 살인을 즐긴다.

     

    눈만 뜨면 잔혹한 컴퓨터 게임들과 마주하는 사람들

    게임 속에서 아무런 감정 없이 사람을 마구마구 죽인다.

     

    또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쉽게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2021년 방영된 드라마 중에서 사회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살인 장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방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졌던 드라마가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시청했을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마치 벌레를 죽이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살인이 이루어진다.

     

    혐오스럽고 잔인했던 이 드라마에 줄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에 밀린 사람들을

    공정한 게임이라는 미명으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상금을 미끼로 참여하게 한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인간을 벌레보다 못한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설정에서

    공정한 게임 규칙을 강조하며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한다.

     

    가면을 쓰고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타락한 자본가들은

    마치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에서

    전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이 드라마에서 이병헌이 말한 것처럼 오징어 게임은 공정한 게임인가?

    이정재가 깜부 할아버지를 속여서 게임에 이기는 행위가 공정한가?

    이정재와 함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기훈이가

    순진한 알리를 배신하고 최종 결승에 오른 것이 공정한가?

     

    이 드라마가 공정하지 않은 규칙을 공정이라 하고

    폭력성과 살인 장면에 대해 언론에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살인의 보편성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씁쓸한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황정민 주연의 인질이라는 영화를 봤다.

    비록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서 폭력과 살인에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홉스식 세계관이 그려낸 세상에서 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5. 그래도 공감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8세기에 애담 스미스는

    국부론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스미스는

    인간은 타인의 처지에 서보는 능력이 타고났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상상 속에서 고통받는 자와 처지를 바꾸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담 스미스는 인간의 공감 능력은 인간에 타고난 능력이라고 우리에게 일깨워 주려고 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애담 스미스의 말대로 공감 능력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자.

    그러면 인류는 수많은 전쟁에서 상대를 죽이고 특정 종족을 집단으로 학살하면서 죽어가는 상대방의 고통에 처지를 바꾸어 아픔을 함께했었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논의는 다음에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직접 살인에 참여하지 않지만, 살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동조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앞에서 거론했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폭력적인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19831일부터 2019106일까지 OCN에서 방영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는 사이코패스의 살인 행각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에게 살인의 보편성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살인과 폭력적인 장면이 넘쳐나는 드라마들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공감 능력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래 사회에는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성공할 것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래 내용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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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공감 능력의 결핍이 더 큰 문제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많은 사람이 공감 결핍증에 걸려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자주 아프다.

    왜 이런 공감 결핍증이 생겼을까?

     

    공감 결핍증이 왜 생겼는지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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